김판쇠이야기
이 곳 김판쇠 전주우족탕은 50여 년간 탕 음식 만드는 외골 인생을 살아온 김판쇠 장인이 땀으로 얻어낸 건강보양식 진수의 식당이다.

김판쇠 그는 전주 덕진구 동산동에서 팔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는 일찍 조실부모하고 지독한 가난과 굶주림으로 어린 시절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집을 나올 수 밖에 없게 된다. 그 때가 10살 때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구두통을 들었다. 그러나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구두닦이 영역의 텃세가 심했고 맞는 일, 굶는 일을 밥 먹듯 했다.

그러던 그에게 굶주림을 면할 기회가 왔다. 만 16세의 나이로 전주 고사동에 있는 신씨네 설렁탕 집에 부엌데기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 곳에서 물을 길러 가마솥에 채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불 피우는 것, 잔심부름 등 새벽잠을 자지 못하고 항상 일찍 일어나 영업 준비를 하게 된다.

탕집 여기저기서 부르게 된다.
전주(구)삼남여객 옆에 있는 덕신회관에서 곰탕, 토끼탕 등 요리를 6년간 맛을 내고 서울 단성사 극장 뒷편에 있는 대왕정에서 갈비탕, 불갈비, 냉면의 요리를 배우며 맛을 내기 시작한다. 전주 전동 (구)성모병원 자리 영진회관에서는 갈비탕, 삼계탕, 불갈비의 맛을 내고 익산에 있는 전주우족탕에서 7년간 우족탕과 갈비탕의 맛을 내기 시작했다.

위에 열거한 것처럼 그의 인생은 거의 탕의 인생이다. 탕으로 시작하여 탕으로 승부를 낸 것이다. 때문에 전주 각 종 탕집의 살아있는 산증인이다. 김판쇠 그는 모든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여러 탕 종류에서 무엇이 제일 좋을까? 고민 끝에 우족탕이라고 결론 내리고 1984년 1월 7일에 금암동 현 자링서 전주 우족탕을 개업하게 된다.

우족탕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건강 보양식이라면 먹고 원기가 회복되고 모든 사람들의 비위에 맞아야 한다. 큰 짐승에서 나는 냄새를 제거하고 구수하고 담백하며 쩍쩍 달라붙는 이 맛을 내기 위해 수 많은 실험을 하게 된다. 그 결과 그만의 비법을 개발하게 되고 손님들의 반응이 엄청나게 좋았다. 지금 식사 때가 되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이며, 많은 환자의 보양식으로 팔리고 있고, 단체 손님은 미리 예약을 해야 할 정도이다.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도 단체로 많이 온다.

이런 김판쇠가 있기까지는 여장부인 부인 김효순여사의 내조가 컸다. 젊은 아낙네가 남의 집 부엌데기를 만나 결혼하고 그 남편과 함께 식당의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다 감당해 냈고, 그 결과 남편을 우족탕의 장인으로 키워냈다.

김판쇠! 그의 삶이 고단했던가? 없는 자를 귀히 여기며 고단한 자를 자기 형편처럼 생각하고 돌봐준다. 지금도 장애인들과 노인들(양로원)을 대접하는 일을 거르지 않고 꼭 챙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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